중년기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에 관심이 많던 제가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을 써보고자 합니다.
유명한 시사잡지인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가 코로나 시국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중년기가 훌쩍 넘어서 선택한 ‘여행감독’이라는 새로운 직업과, ‘여행자 플랫폼’을 만들어 다양한 콘셉트의 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생각하고 활동했던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네러티브
모두가 언택트 시대를 고민할 때 나는 여행이라는 고전적인 콘택트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언택트 시대가 되면 그 반작용으로 콘택트에 대한 요구가 더 절실해질 것으로 보고 그때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전적인 콘택트의 방식인 ‘여행’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자를 그만두고 여행감독을 자처하면서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목적도 ‘여행을 통한 네트워크 공유’를 위해서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을 갈라놓을수록 외로움이 더해지고 그 반작용으로 관계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온택트 시대의 새로운 네트워킹 창구인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은 만날 훅은 만날 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는 원심력에 반해 이런 구심력이 작동됐습니다.
그런데 그 연결을 다들 도시에서만 하려고 합니다. 같이 책을 읽거나, 같이 취미 활동을 하거나 하면서, 여러 소셜 플랫폼이 도시에서 답을 찾는데, 사실 함께 도시를 떠나는 것이 훨씬 더 ‘소셜’합니다.
현대인은 도시에서 분자화되어 있습니다. 그 강력한 원심력이 개인을 방에 가두고 사람들은 외로움에 익숙해집니다. 사람들을 갈라놓은 도시를 떠나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익숙하지 않은 비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여행의 출발은 늘 차갑습니다. 출발지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어시장의 동태 상자 안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행에서 친해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가 바뀌게 됩니다. 스스로 얼음이 녹고 말문이 트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공기가 바뀌는 것이 주는 감동은 큽니다. 전부 자기 고백적이 되지요. 그리고 남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합니다.
주최자로서 희열이 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어주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에게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여행감독을 자처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는 자의식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여행이 필요합니다. 여행은 그들에게 인생의 ‘중간 정산’이 되고 좋은 여행 친구는 그들에게 인간관계의 ‘중간 급유’가 되어줍니다. 숱한 여행을 통한 임상 경험이 내려준 결론입니다. 여행은 그들에게 고된 일상에 대한 보상이자 포상입니다.
여행을 연출하는 일은 설렘을 연출하는 일입니다. 여행의 성패는 설렘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됩니다 여행의 설렘은 어떻게 연출하는가? 설렘은 만남에 대한 기대에서 나옵니다. 여행 연출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문명의 만남, 사람과 자연의 ‘절묘한 만남’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어떻게 연출하는가?
여행 연출의 핵심은 끌어냄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끌어내고 자기 역량을 끌어올리고 자기 지식을 발휘하게 합니다. 끌어내고 끌어올리고 발휘하게 하면 절묘한 만남이 이뤄집니다. 서로 솔직해지고 서로 도움이 되고 서로 나누는 여행이 가능해집니다.
자기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나는 여행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내 인생의 변곡점을 꼽아본다면?’,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어가고 싶은가?’, ‘내가 이 여행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좋은 여행감독의 자격이란 별것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그들이 여행감독으로서 빛날 수 있도록 나는 여행 프로듀서가 되어 뒤에서 받쳐 줍니다. 그들의 여행을 함께한 이들 또한 나중에 또 다른 사람을 위한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감독이 될 것입니다.
현대인의 대표적 만성질환을 하나 꼽으라면 ‘외로움’을 들 수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도 이 외로움을 파고들고, 많은 다른 사회병리도 이 외로움 속에 스며듭니다. 중년의 외로움은 청춘의 외로움과는 다릅니다. 더 고질적입니다.
청춘은 아직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있지만 중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실망이 누적된 상태라 외로움이 더 깊습니다. 청춘의 외로움이 물리적이라면, 중년의 그것은 화학적이라 치료가 더 어렵습니다.
여행감독을 자처하고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이 외로움을 치료하는 데, 치료는 안 되더라도 완화하는 데, 혹은 달래는 데 조금은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만들었던 여행 뒤에 ‘마음의 마을’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남에 지쳤으면서도 사람들은 새로운 만남을 갈구합니다. 여행이라는 새로운 만남의 형식을 통해 이 딜레마를 극복해보려 했습니다.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할 때 ‘여행을 통한 네트워크 공유’를 내걸었는데, 이 네트워크는 사회생활 네트워크와는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사회생활 네트워크가 이해관계에 기반한다면 여행에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는 ‘정’에 기반합니다. 그리고 그 정은 의식주를 함께하면서 짧은 시간에 응축됩니다.
여행을 같이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즐겁습니다. 함께 즐거운 추억을 나눌 수 있고 즐거운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행친구가 생기면 삶에 활력이 생깁니다. 시간이 지난 시점에 돌아보니 다행히 처음 구상한 그림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에필로그
나는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한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플랫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반환점을 돈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번 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나이입니다. 나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삶을 조율하는 것이 인생을 더 값지게 사는 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