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동안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현장 경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시니어 관련 사업에 관심은 있었지만 복지 현장에서 나이든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아마도 나는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액티브 노인만을 생각했던 것 같다.
노인에게 미래를 본다고 생각하면 조금 뭐하지만 은퇴 후의 시간이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적합한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간보호센터는 주로 4,5,인지 등급의 노인들이 매일 등교해서 하루종일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들의 케어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유치원과 같은 곳이다.
아침, 저녁으로 직원들이 그분들을 모시러 가고 하교도 시키는 시스템이다.
센터에 오는 순간부터 돌아가는 시간까지 그들은 짜여진 시간에 맞춰 일정을 소화한다.
어떤 분들은 치매로 인해 인지기능을 상실하고 신체마저 거동이 불편해서 하루종일 멍 때리며 휠체어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인지기능이 멀쩡한 분들도 거의 대부분이 걷는 데 불편함을 느껴 일명 워커라고 하는 작은 보행기를 타고 화장실을 가거나 조금씩 이동을 하신다.
주간보호센터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그렇다. 느릿느릿
어르신들은 앞에서 선생님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며 하루종일 말 할 기회를 얻지 못해 교실은 무거운 침묵이 지배한다.
노인들의 지적 수준이 천차만별이지만 프로그램은 차별화되어 있지 않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만약 수준별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전문인력이 훨씬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거의 매일 비슷한 프로그램이 반복된다.
물론 외부강사들의 시간에는 우리 가락 등의 짧은 공연을 보기도 하지만 하루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한가지 제안하자면 노인들끼리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마주보는 자리배치와 자기의 의견을 드러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선생님들의 프로그램 운영이다.
원래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루종일 귀가 아프게 듣는 것은 트로트 가요들이다.
1년동안 들을 트로트를 단 몇시간만에 듣게 되는 경험이란
어르신들 중에서도 다른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트로트로 획일화하는 것은 조금 아쉽다.
밖에서는 몰랐던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도 충분히 이해하며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직업이지만 자기 부모도 아닌데 성심을 다해 보살펴 드린다는 것은 칭찬을 받아 마땅한 선행이다.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직군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이 조금만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한다면 노인들도 색다른 경험이 축적되어 인지발달과 사회성에 도움이 되지않을까?
이러한 현장의 모습과는 별도로
15일간의 아르바이트 감상을 한마디로 말 한다면 '진한 슬픔'이었다.
내가 '슬픔'을 느꼈다고 말한 이유는
나 역시 노년기를 향해 가는 지금 저 분들이 나의 미래의 모습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교실 뒤 편에서 그분들을 보고 있으면 아주 큰 무덤이 연상되었다.
아마도 젊은이들처럼 활달하게 말하거나 이동할 수 없는 현실적인 장애가 침묵을 유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치매에 걸리거나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형편이 된다면 화장실가는 것에서 부터 밥 먹는 것까지 모든 일상생활을 타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되겠지.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다.
자식들의 눈치를 보면서 불편을 덜어주려고 자의든 타의든 시설에 다니게 되고 타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된다면 과연 내 삶은 어떤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일까.
어떤 실습생은 1,2등급의 자리에 누워만 있는 노인들이 대부분인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갔다오면 주간보호센터의 노인들이 얼마나 건강한지, 일하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알게 될거라고 말한다.
그분의 말이 맞다 하여도 질병과 신체 장애의 정도를 떠나 남에게 의지하며 늙어간다는 것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날, 친구와 함께 우리가 늙어서 닥칠 문제들을 이야기하며 둘만의 어떤 다짐을 하였다.
나와 친구가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유약하고 병든 노인이 되었을 때도 그 다짐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미래가 불행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면 아마도 결심 그대로 실행되지 않을까?
바라건데, 근사하지는 않더라도 자식에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나의 삶을 잘 이끌어가다 연기처럼 흔적없이 사라지는 작별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오길..